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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엔튜닝] 한량과 중압감(MD칼럼)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요즘 나는 일을 하다 짜증 나면 기타를 잡고, 기타를 뚱땅거리다 짜증 나면 다시 책으로 돌아간다. 누가 보면 한량이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어느새 기타 연습도 ‘일처럼’ 한다. 잘해야 한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하다. 그러니 즐겁지 않다. 마찬가지로 책이 좋아 북에디터로 살고 있건만, 이게 업이 되고 보니 내 맘대로 안 되는 일투성이라 짜증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요 몇 주는 특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 많았다. 

뇌과학자에 따르면 인간 뇌는 애초에 멀티 태스킹에 적합하지 않다는데, 몇 개의 원고를 동시에 굴리며 머리를 쥐어짜고 손발이 모자란다 아우성치는 건 에디터에게 일상이다. 

다시 기타를 뚱땅거리다 문득 전업 뮤지션의 삶이 궁금해졌다. 지인에게 추천받은 ‘칠흑 같은 아침(Coal Black Mornings)’(이경준 옮김, 마르코폴로 펴냄)을 펼쳐보았다. 록밴드 스웨이드나 그 보컬 브렛 앤더슨에 대한 사전 정보는 없었다. (책은 다 읽은 지금도 잘 모른다.) 제목이 주는 느낌이나 ‘이것은 실패의 기록’이라고 말하는 저자 서문에서 잔뜩 긴장했지만, 괜한 기우였다.

책을 통해 본 그의 춥고 가난한 유년 시절과 여전히 가난하고 정처 없이 흘러가는 청년 시절은 상처 입고 느릴지언정, 적어도 내겐 뭔가 불안하다거나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묘하게 어느 한구석이 단단한 느낌이다. 아마도 그것은 가난할지언정 일상에서 문화적 경험을 누리고 공유하고자 했던 그의 부모님 덕이 아니었을까. 

바그너, 엘가, 쇼팽 등 클래식을 늘 시끄럽게 틀어놓았던 아버지와 본인이 직접 그린 예쁜 수채화나 반 고흐 등 그림으로 집 안을 장식했던 어머니가 브렛 앤더슨에게 있었다. 꼭 부르디외의 문화자본을 들먹이지 않아도, 한 사람을 결정짓는 많은 것은 그가 어떤 경험을 어떻게 해왔는지에 좌우되지 않던가. 문화와 예술이 가진, 내 글재주로는 명확히 표현할 수 없는 힘이 그에게는 진작 뿌리내리고 있었던 듯하다. 

책은 록밴드 스웨이드가 막 주목받기 시작할 무렵에서 끝을 맺는데, 눈에 띄는 구절을 옮겨본다. “홀마크 카드 소리 같은 걸 연주하고 싶지 않다면, 가끔은 가고 싶은 곳만큼이나 가고 싶지 않은 곳을 탐색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건 성공만큼이나 자신을 규정하게 될 실수와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렇게 남은 흠결들은 너무나 매혹적이다.” (본문 130-131쪽)    

한 사람의 진정성 있는 인생 이야기는 굳이 교훈을 주지 않으려 해도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큰 울림을 준다. 그것이 성공의 기록이든 실패의 기록이든 말이다. 그의 글을 읽으며, 내 기타 배우기가 실패로 끝난다 할지라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두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성공으로 끝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다른 뮤지션의 글도 읽고 싶어졌다. 기타 연습은 안 하고…. 아 또 샛길인가. 아니 중압감에서 벗어났으니 우선은 잘된 건가.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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