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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꿈[MD칼럼]

[곽명동의 씨네톡]

그것이 꿈이든, 연인이든 첫사랑의 추억은 날카롭다. 인생의 한 축을 뒤흔드는 사건이었을테니까. 누구에게나 “평생을 좌우할 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지나면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경험하지 못한 인생이 열린다. 누구는 가는 길에 힘든 일을 겪으며 포기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끝내 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목적지에 가 닿지 못하더라도, 그 길을 걷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얻기도 한다. 인생은 그렇게 흘러간다.

애니매이션은 봉준호 감독의 첫사랑이다. 그는 1992년 영화 동아리 ‘노란문’에서 22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룩킹 포 파라다이스(Looking for Paradise)’를 딱 한 번 상영했다. 배우 우현과 안내상, ‘플라이 대디’, ‘해로’, ‘사제로부터 온 편지’ 등의 연출자이자 ‘노란문’의 창립 주체 중 한 명인 최종태 감독 등 10명 남짓한 인원이 봉 감독의 애니메이션 데뷔작을 봤다. 당시 관람객이자 회원이었던 ‘미싱타는 여자들’의 이혁래 감독이 ‘룩킹 포 파라다이스’를 추적하고, 영화에 대한 씨네필들의 열정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내년 넷플릭스에 선보인다.

봉 감독은 1년 전, 미국 영화과 학생들과의 유튜브 대화에서 데뷔작을 회상했다. “만화책을 좋아하는데, 애니메이션 감독을 생각했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그는 “나의 꿈이다”라고 답했다. “인형이 나오는 스톱모션 애니매이션을 만들었다. 하루종일 일해도 집에 와서 틀어보면 휘리릭 3초만에 지나갔다. 인형한테 증오심을 품었다. 니가 알아서 좀 움직이면 안되냐고 화풀이했다. 그래서 실사영화로 옮겨간 것 같기도 하다…언젠가 해보고 싶다. 애니메이션은 가장 순수하고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세계다.”

잊혀진 듯 했던 그의 꿈은 아내가 사온 책으로 되살아났다. 프랑스 환경 운동가인 크레르 누비안이 2007년 내놓은 'The Deep:The Extraordinary Creatures of the Abyss'(심연의 특별한 창조물)이라는 책은 그의 열정에 다시 불을 지폈다. 그는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이 책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바다 생명체 사진을 보고 상상력이 이어져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소 애니메이션은 꼭 도전하고 싶은 장르였다”고 강조했다. 이 영화는 2026년까지 완성될 예정이다. 모두가 그의 애니메이션을 기다리는 중이다.

30년전 인형에게 화풀이했던 젊은 씨네필은 결코 꿈을 잃지 않았다.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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