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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얼굴’,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 ‘니얼굴’의 제목은 중의적이다. 먼저, 발달장애인 정은혜 작가 입장에서 ‘니얼굴’은 그림을 그려달라는 손님을 뜻한다. 그 말 속엔 “당신은 충분히 예뻐요”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실제 정은혜 작가는 “여자는 예쁘고, 아름답다. 남자는 멋있다”는 생각으로 그린다고 말했다. 손님 입장에서 ‘니얼굴’은 정은혜 작가의 얼굴이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그의 얼굴은 비장애인과 다르다. 키는 작고, 몸은 뚱뚱하며, 피부도 깨끗하지 않다. 손님이 정은혜 작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사람의 얼굴은 다르다는 ‘평범한 진실’을 깨닫는다. 그 진실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다.

정은혜 작가의 어머니 장차현실 작가는 2013년 2월 27일을 잊지 못한다. 잡지에서 향수를 들고 있는 외국 모델 사진을 찢어서 그려보라고 했더니, 딸은 놀라운 실력을 발휘했다. 전율을 느꼈다. 그동안 딸을 장애인으로만 바라보고 그림을 잘 그리는 능력을 알아보지 못했다. 후회가 밀려왔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힘겨워했던 딸과 어머니는 그림으로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었다. 딸은 본능적으로 그렸다. 빛이 지나가는 선 자체로 명과 암을 구분했다. 제도교육을 받지 않은 덕분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창조했다. 장차현실 작가는 “나도 딸처럼 자유롭게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 ‘니얼굴’은 정은혜 작가가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수많은 사람을 그리며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정은혜 작가는 쉬지않고 그렸다. 무더운 날엔 종기가 났고, 추운날엔 손이 부르텄다. 그래도 그렸다. 정은혜 작가가 그린 초상화를 두 손에 받아든 손님들은 모두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나도 모르는 내 특징을 잡아낸 신선한 시각의 그림이 펼쳐졌다. “우와 내 얼굴이 이렇구나”라는 감탄이 터진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그는 “다 예쁘다. 보이는대로 그렸을 뿐이다. 사실대로”라고 말한다. 캐리커처는 손님에게 ‘예술적 체험’으로 다가온다.

그림은 정은혜 작가의 삶을 구원했다. 그는 자신을 쳐다보는 비장애인의 눈빛이 싫었다. ‘시선 강박’에 시달렸다. 힘든 나날이 계속됐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화실에서 조금씩 그림 실력을 쌓아갔다. 그리면 그릴수록 실력이 늘었다. 그림에 자신감을 갖고 2016년부터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비장애인의 눈과 마주쳤다. 서서히 강박이 사라지고, 얼굴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는 그림을 그린 날짜와 손님의 이름을 적는다. 모두 4,000명 이상을 종이에 담았다. 방구석에서 화만 내고 씩씩거렸던 정은혜 작가는 사람을 만나면서 아픈 과거와 작별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함께 자신만의 길을 찾았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엔 맹인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남자가 등장한다. 처음에 남자는 아내와 인연이 있는 맹인이 멀리서 자신의 집에 찾아온다는 소식에 시큰둥했다. 낯선 사람을 집 안에 들이는게 영 못마땅했다. 그렇게 서먹서먹했던 맹인과 남자는 후반부에 함께 그림을 그린다. 남자는 맹인의 손을 잡고 대성당을 그렸다.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정은혜 작가가 그린 초상화를 감상하는 손님도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It's really something)”라고 느낄 것이다.

[사진 = 영화사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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