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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곡 53개의 리메이크, 메탈리카 '블랙앨범' 30주년 기념 헌정[김성대의 음악노트]

AC/DC의 'Back In Black'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블랙 앨범'일 메탈리카의 'Metallica(이하 '블랙 앨범')'가 올해로 발매 30주년을 맞았다. 다섯 번째 작품이 30주년이라니. 메탈리카도 정말 많이 오긴 했다.

이 앨범은 헤비메탈계 최고 앨범도(제일 많이 팔린 메탈 앨범이긴 하다) 스래시메탈계의 혁명(혁명은 이들의 3, 4집이 일으켰다)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장르 불문 위대한 앨범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일단 수록된 모든 곡들이 준수하고 밥 록이라는 프로듀서의 프로듀싱 역량 면에서 이 작품은 여전히 강렬한 빛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멤버들은 자신들 운명을 바꿔버린 이 앨범의 30주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는지 두 가지 일을 꾸몄다. 하나는 그 흔한 '작품의 리마스터링 및 미공개 음원 대방출'이고 다른 하나는 이 앨범을 향한 후배들의 헌정(Tribute)이다.

"12곡, 그리고 53개의 커버"

'Blacklist'로 결정된 헌정 앨범의 카피 문구였다. 12곡인 건 알겠는데 커버가 '53개'라고? 그러니까 무려 53팀이 한 앨범을 지지고 볶으리란 예고였다. 처음엔 산만하게 느껴졌다. 국경, 장르, 세대, 젠더, 인지도를 넘어선 참여 뮤지션들의 면면과 미리 푼 트랙들을 보고 들었을 때도 그냥 메탈리카의 글로벌한 영향력, 전 지구적 인기를 한 번 짚고 넘어가자는 데 이 프로젝트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윤도현의 밴드가 해석한 'Sad But True', 카마시 워싱턴이 변주한 'My Friend Of Misery'가 입맛을 당긴 건 사실이지만 모든 도전이 모두의 성취가 될지는 미지수였다. 뭔가 불안했다. 그리고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초반은 그럭저럭 들을 만했다. 어쨌거나 이들은 메탈리카와 블랙 앨범에 존경을 바치면서 자신들의 음악 색깔도 지켜내야 하는 입장이었을 테니, 그 '창의적 모방'이라는 긴장이 'Enter Sandman'과 'Sad But True'까지는 잘 스며들었던 셈이다.

'Enter Sandman'의 경우 원곡에 가까운 맛을 내려다 갑갑한 톤으로만 일관한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맥 드마르코가 있는 반면, 기존 곡의 드라이브감 대신 스타카토의 절도감을 택한 후아네스의 참신한 아이디어도 있다. 또 댄서블한 인더스트리얼 록적 접근이 좋았던 리나 사와야마의 버전(이는 세인트 빈센트의 'Sad But True'와 비교해봐도 좋다)은 팀 리더가 헤비메탈 마니아로 이미 유명했고 근작 'Van Weezer'로 그 사실을 새삼 알린 위저의 버전과 같이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해준다.

블랙 앨범에서 가장 헤비했던 'Sad But True'는 영국 싱어송라이터 샘 펜더를 만나 피아노 팝 발라드로 거듭났다. 샘은 라스의 우직한 비트로 성큼 나아갔던 원작의 그루브를 버리고 현악과 피아노로 분위기를 완성해 자신의 느낌을 강조했다. 또 잘 나가는 록 듀오 로열 블러드는 마이크 패튼(페이스 노 모어)을 닮은 토니 에스포지토의 보컬 및 후반부 드럼 솔로를 앞세운 화이트 리퍼와 함께 메탈리카의 옛 노래를 되도록 해치지 않는 선에서 리메이크했고, 합주실 현장감을 살려 속도를 높인 YB 버전은 멕시코의 DJ 겸 프로듀서 멕시칸 인스티튜트 오브 사운드가 트리오 연주 팀 라 펄라, 래퍼 게라 엠엑스와 함께 한 '힙'한 비틀기엔 아쉽게도 미치지 못했다.

메탈리카식 드라이브감의 끝을 들려준 'Holier Than Thou'는 원곡의 질주감 따윈 무시하고 뚝심 있게 밀어붙인 스코틀랜드 록 밴드 비피 클라이로 버전에서 시작해 메인 기타 리프를 왜곡한 뒤 기존 기타 솔로는 가루로 만들어버린 호주 펑크 밴드 채츠(The Chats)와 거칠게 치고 달리는 캘리포니아 하드코어 펑크 밴드 오프!(Off!)로 이어진다. 평소 메탈리카와 가깝게 지내온 코리 테일러(슬립낫)는 저들의 고전 'Whiplash'의 블래스트 비트를 슬쩍 가져와 붙인 것 외엔 원곡에 충실하며 자신의 영웅을 터프하게 기렸다.

'The Unforgiven'은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 변화가 번져 나오게끔 한 케이지 디 엘리펀트의 것으로 문을 연다. 낯설지 않으면서 낯선 트랙. 하지만 인도의 싱어송라이터 비샬 대드라니와 동료들이 손댄 같은 곡은 그것보다 더 깊게 가라앉으며 지루한 다이어트 시그(Diet Cig)의 해석에 앞서 '낯설고도 낯선' 편곡을 시도했다. 힙합 그룹 플랫부시 좀비스와 디제이 스크래치의 결과물도 그렇고 염세적인 알앤비를 지향한 모세 섬니의 해석도 그렇고, 'The Unforgiven'은 아마도 블랙 앨범 메뉴들 중 가장 많은 부침을 겪은 트랙일 것이다.

부침을 겪은 건 'Wherever I May Roam'도 만만치 않다. 블랙 앨범에서 가장 '대곡'스러웠던 이 트랙은 콜롬비아가 낳은 세계적인 레게톤 뮤지션 제이 발빈과 영국 일렉트로닉 듀오 체이스 앤 스테이터스를 만나 잘리고 찢기고 붙었다 떨어지며 팔자에 없던 수난(?)을 겪는다. 이는 듣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가장 많이 갈릴 지점이기도 하다.

호오는 넵튠스에서도 갈릴 것 같다. 아니, 이건 그냥 '별로'에 더 가깝다. 그들은 매가리(脈)도 반전도 없는 안이한 구성으로 이름값을 못했다. 차라리 넵튠스에게 기대했던 것은 프랑스의 세바스티앙이 매시업 트랙 'Don't Tread On Else Matters'에서 들려주었다고 해야 옳겠다. 세바스티앙은 블랙리스트에서 블랙 앨범을 제대로 이해한 몇 안 되는 프로듀서였다. 재밌는 건 'Wherever I May Roam'의 원형을 의외로 컨트리 가수 존 파디가 들려주고 있는 것인데, 그가 컨트리 가수라는 건 곡 사이와 곡 끝에서 열심히 울어준 피들(Fiddle) 덕분이다.

이쯤에서 나는 이 기획의 핵심 철학(또는 정서)에 조금씩 반감이 들기 시작했다. 다양한 장르와 세대 뮤지션들이 실험적이고 때론 파격적인 해석을 내놓는 건 좋은데 그것도 어떤 기준과 수준에 이르렀을 때 얘기다. 이처럼 완성도 편차가 눈에 띌 정도였으면 차라리 과거 디 크룹스(Die Krupps)가 했던 가치보다 한국의 'Am I Metallica?'나 영미권의 'Metallic Assault: A Tribute to Metallica'가 바랐던 가치, 그러니까 '색다른 장르 뮤지션들의 메탈리카 트리뷰트'가 아닌 '헤비메탈 뮤지션들의 메탈리카 트리뷰트'로 방향을 잡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실제 덴마크 록 밴드 볼비트와 몽골 헤비메탈 밴드 후(The Hu)가 'Don't Tread On Me', 'Through The Never'에서 들려준 후련함은 포크 록 밴드 굿나이트, 텍사스(Goodnight, Texas)가 'Of Wolf And Man'의 저돌성을 무참히 잠재운 일에 비할 순 없을 일이기 때문이다.

차분한 회고는 없이 들뜬 파격만 노리는 이 일방적 분위기는 선곡의 쏠림 현상까지 만나 더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바로 'Nothing Else Matters' 얘기인데 겨우 한 번씩 다뤄진 'Of Wolf And Man'과 'The Struggle Within'에 비해 무려 12팀(세바스티앙의 매시업 버전까지 더하면 13팀)이 선택한 이 곡은 '단 한 곡의 각자 다른 해석'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블랙 앨범의 러닝 타임에 맞먹는 러닝 타임으로 듣는 나를 지루하게 했다. 이 12트랙을 들으며 나는 혹시 이 기획 앨범이 블랙 앨범의 위대함을 기리기보단 마일리 사이러스와 엘튼 존, 요요 마와 채드 스미스를 한 트랙에 넣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의심하기까지 했다. 정말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Across The Universe' 같은 걸 들려주지도 못할 거면서 왜 한 곡으로 이토록 긴 실험을 했어야 했나. 그나마 이제는 홀로 남은 페르 게슬레가 피지 록시트(PG Roxette)라는 이름으로 편곡한 것과 긴 기타 솔로로 여백을 음미한 크리스 스태플턴 버전은 들어줄 만했지만, 그래도 이건 해도 너무 했다.

다행히 'My Friend Of Misery'에서 체리 글레이저의 인트로나 이지아(Izia)의 건반 솔로, 화끈한 플라멩코 스타일로 밀어붙인 멕시코 듀오 로드리고 이 가브리엘라의 'The Struggle Within'이 이 허무함을 달래줬기에 망정이지, 전체적으론 (예상대로) 산만하고 모호한 헌정이었다. 메탈리카와 블랙 앨범이라는 화두를 놓고 고작 이 정도 깨달음에 밖엔 이를 수 없었을까. 아무래도 길을 찾으려 모였을 'Blacklist'는 결국 길을 잃은 헌정으로 역사에 남을 것 같다.

[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코리아]

*이 글은 본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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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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