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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이준익 감독이 건네는 악수[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이준익 감독은 역사에서 잊혀진 사람을 스크린에 불러낸다. 역사는 위인을 기록한다. 그는 위인을 빛나게 해주는, 그러나 역사는 기억하지 못하는 인물을 되살린다. 혼자 우뚝한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성장한다. 삶의 이치와 우주의 섭리가 그렇게 흘러간다. ‘라디오스타’의 유명한 대사처럼, 홀로 빛나는 별은 없다. 서로 빛을 받는다. 그의 영화엔 서로 빛을 주고 받는 두 인물의 우정과 존경이 녹아있다.

‘동주’의 윤동주(강하늘) 곁에 송몽규(박정민)가 있고, ‘자산어보’의 정약전(설경구) 옆에는 창대(변요한)가 있다. 송몽규와 창대의 공통점은 뜨거운 심장을 가졌다는 것이다. 송몽규는 온몸으로 일제와 맞선 독립운동가였다. 그의 들끓는 혈기는 윤동주의 차분한 열정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송몽규는 1943년 7월 10일 ‘재교토 조선인학생민족주의그룹사건’ 혐의로 검거된 뒤, 1945년 3월 7일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같은 사건으로 검거된 윤동주가 일본에서 쓴 글은 1943년 7월 체포되면서 망실됐는데, 친구 강처중에게 보낸 편지에 다섯 편의 시가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쉽게 씌여진 시’에서 윤동주는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라고 썼다. 윤동주가 ‘최후의 나’를 향해 가기 까지, 송몽규의 영향도 작용했을 것이다.

창대는 ‘자산어보’ 서문에 나오는 인물이다. 정약전은 창대의 세밀한 관찰력의 도움을 얻어 ‘자산어보’를 집필했다고 밝혔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창대를 더 큰 세상에 나가 ‘목민심서’의 뜻을 펼치려는 인물로 설정했다. 그 과정에서 창대는 민중의 고혈을 짜내는 조선 후기 사회의 병폐에 저항한다. 세상의 부조리와 부당함과 맞서 싸우지만, 결국 견고한 부패사슬을 끊어내지 못한 채 쓸쓸히 돌아온다.

‘박열’의 아나키스트 박열(이제훈)과 가네코 후미코(최서희)도 그러했듯, 이준익 감독은 새로운 세상을 꿈꾼 인물을 소중하게 보듬는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뜨거운 사람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 내가 있고 네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송몽규, 창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송몽규, 가네코 후미코는 일제의 탄압에 목숨을 잃었고, 창대는 부패한 계급사회에 좌절했다.

이들의 삶이 역사에서 미진할지 몰라도, 벗에게 끼친 영향은 컸다. 윤동주 안에 송몽규가 있고, 정약전의 삶에 창대가 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도 서로에게 마찬가지다. 역사는 그들을 잊었지만, 이준익 감독은 잊지 않았다. 이들은 잊혀진 사람들이 아니라 기억해야할 사람들이다. 그들의 뜨거운 심장은 스크린을 통해 여전히 살아 숨쉰다. 휴머니스트 이준익 감독은 그들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악수를 청했다.

[사진 = 메가박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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