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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좌 튼 어쿠스틱 블루스, 찰리 정 'Sein's Blues'[김성대의 음악노트]

무릇 차(茶)를 마실 땐 손님이 적을 수록 귀한 것으로 여겨진다. 손님이 많으면 떠들썩해지고 떠들썩하면 차가 지닌 아담하고 우아한 정취(雅趣)를 제대로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는 7-8명이 마실 때를 시(施)라 하고 5-6명이 마실 때를 범(泛)이라 한다. 또 3-4명이 마시면 취(趣), 두 손님과 마시면 승(勝)이라 이른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차라는 것은 혼자 마실 때를 으뜸으로 쳐 사람들은 그 때를 신(神)이라 부른다.

기타리스트 찰리 정의 새 앨범 ‘Sein’s Blues’는 차로 치면 ‘신’의 영역에 가까운 작품이다. 앨범 커버에서 그는 명상하듯 가부좌에 가까운 모습으로 앉았다. 그리고 그의 두 손엔 45도로 기울어진 어쿠스틱 기타 한 대가 들려 있다. 찰리 정은 지금 홀로 차를 마시며 ‘신’을 누리려는 차인(茶人)처럼 어쿠스틱 블루스를 연주하며 ‘신’을 만나려는 찰나다. 앨범 제목에서 자인(Sein)은 독일어로 ‘존재’라는 뜻. 그래서 이 앨범은 ‘존재의 블루스’다. 잠시 전원을 끄고 완전한 침묵 속에 놓인 기타와 자신이라는 ‘존재’로 악(?)의 여백을 즐기겠다는 연주자의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찰리 정은 미국에서 재즈를 배웠지만 그는 늘 블루스를 추구했다. 자신의 음악적 영혼과 진심을 담기에 블루스만한 그릇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밴드를 이끌고 일렉트릭 재즈 퓨전을 펼칠 때도 저변엔 언제나 블루스의 흙냄새를 깔고 갔다. 그런 찰리 정은 평단의 습관적 상찬과 매체의 관례적 섭외로 과잉 대표 되고 있는 몇몇 국내 (블루스)기타리스트들을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어쩌면 이미 뛰어넘은) 귀한 연주자다. 뻣뻣한 자만보단 부드러운 겸손이, 허둥대는 과욕보단 차분한 열정이 그의 연주엔 더 어울려보인다. 이번 작품은 그런 찰리 정 기타 세계의 조용한 자기 정리이자, 천천히 그러나 더 정확해지려는 한 블루스 기타리스트 내면의 자기 다짐에 가깝다.

‘Rhythm Dance’ 정도를 빼면 곡들은 약속이나 한 듯 느리게 흐른다. 느림은 이 음반의 본질이다. 들리는 건 오직 코드를 짚기 위해 미끄러지는 왼손과 기타줄의 마찰음, 그 음들을 뜯어내는 오른손의 분주함, 그리고 간간이 들이쉬는 찰리 정의 숨소리 뿐이다. 맥락은 다르되 그 숨소리는 ’The Koln Concert’에서 키스 재럿이 내뱉는 흐느낌을 연상시킨다. 또한 앨범 전반을 수놓는 섬세하고 고즈넉한 정서는 팻 메시니와 찰리 헤이든이 ‘Beyond The Missouri Sky’에서 엮어낸 풍요로운 낭만을 닮았다. 특히 후자는 찰리 정이 2014년작 ‘Sunshine Blue’에 실었던 곡을 다시 만진 ’이별의 초상’과 앤디 윌리암스, 빙 크로스비, 심지어 걸그룹 소녀시대까지 불렀던 아일랜드 포크송 ‘Danny Boy’에서 가장 빼어나게 재현된다.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의 ‘Little Wing’이다. ‘Little Wing’은 ‘Hey Joe’ ‘Purple Haze’와 더불어 헨드릭스 하면 3초 안에 떠오르는 일렉트릭 블루스 기타 명곡이다. 지금 찰리 정은 어쿠스틱 기타를 잡고 있으므로 원곡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시작부터 2분대 중반까진 보컬 멜로디까지 챙기며 원곡 테마를 비교적 충실히 가져가다, 2분대 후반에 들면서 그는 자신만의 즉흥 연주 세계로 헨드릭스를 초대한다. 그것은 러닝타임도 비슷한 6분대로, 같은 연주곡이지만 스티비 레이 본 것과는 다르고 원곡처럼 보컬을 곁들인 스키드 로우, 산타나, 에릭 클랩튼(데렉 앤 더 도미노스), 스팅의 버전과는 더 다르다. 아니, 적어도 내 귀엔 저 유명한 버전들에 찰리 정의 해석이 뒤질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아마 헨드릭스가 살아 이 곡을 들었다면 되려 찰리 정을 힘껏 안아주지 않았을까. 그만큼 창의적인 ‘다시 연주하기’다.

흔히 차를 마시면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없어진다고 한다. 홀로 마시는 차의 ‘아취’를 닮은 찰리 정의 음악도 그렇다. ‘Sein’s Walk’와 ‘Kailash Blues’의 사뿐거리는 셔플 리듬, 따뜻한 멜로디에 푹 파묻힐 수 있는 ‘It’s All In The Game’과 ‘소몰이’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답답했던 가슴이 열리고 분노와 시기의 마음은 잦아든다. 그러면서 오르려만 하다 내려다볼 여유도 갖고, 채워 봤자 비워질 충만의 허상을 깨달아 비움으로써 채워낸다. 어쩌면 국악에서 뻗어난 다악(茶樂)이라는 것이 꼭 해당 장르에만 어울리는 이름은 아닐 거다. 블루스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제공=Charlie Jung]

*이 글은 본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뮤직매터스 필진

대중음악지 <파라노이드> 필진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국내)’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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