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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외로운 광대가 분노의 괴물로 ‘변해가는’ 아프고 섬뜩한 탄생기[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올해는 ‘배트맨’ 탄생 80주년이다. 모두가 ‘배트맨’ 탄생을 축하하고 있을 때, 토드 필립스 감독은 3년전부터 준비한 ‘조커’를 내놓았다. 사람들은 빌런보다 영웅에 관심이 더 많다. 빌런은 그저 영웅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극복해야하는 장애물 정도로 인식됐다. 과연 그러한가. 강력한 빌런이 없다면 영웅의 매력도 떨어진다. ‘배트맨’이 지난 80년간 오랜 생명력을 유지한 것은 우연과 혼돈을 작동원리로 삼아 사회를 뒤집어 엎는 조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히스 레저)는 배트맨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 없이 뭘 하겠어? 너는 나를 완전하게 만들어.”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본성을 끌어내는 ‘악의 블랙홀’이다. 그는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부정한 수단을 쓸 수 밖에 없는 배트맨을 벼랑 끝으로 몰고간다. 정의로운 검사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도 조커의 계략에 말려 악에 물든다. 일반시민들은 상대를 죽여야 자신이 살 수 있는 위험에 처한다. 조커는 묻는다. “왜 그렇게 심각해?”

그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한 ‘인정 투쟁’이나 갱단의 보스가 되기 위한 권력욕도 없다. 물질적 욕망에도 무관심하다(돈다발을 불태우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그가 일으키는 악행과 테러는 악마가 즐기는 놀이처럼 보인다. 예컨대 그에게 악은 유희다.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에서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 유희를 좋아하는 코미디언의 삶을 살다가 희대의 악당으로 서서히 바뀌어가는 과정은 ‘다크 나이트’와 비교하면 의미심장하다. 1981년의 고담시는 빈부격차가 극심한 곳이다. 환경미화원의 파업으로 도시는 쓰레기가 넘쳐난다. 이 도시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폭력과 조롱이 만연해 있다. 아서 플렉은 시시때때로 웃음이 터져나오는 질병을 앓고 있는데다 별로 웃기지도 못한다. 게다가 10대 청소년들에겐 괴롭힘을 당하고, 직장인들에게 얻어맞고, 동료들에게는 놀림거리로 전락한다. 심지어 존경하는 유명 코미디언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 니로)도 그를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와 ‘코미디의 왕’(두 영화 모두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이다)을 바탕으로 조커의 캐릭터를 빚어냈다. ‘코미디의 왕’에서 펍킨이 존경하는 코미디언 제리를 이용하는 방식은 아서 플렉이 머레이 프랭클린에게 다가간 것과 유사하다. 아서 플렉의 반사회적인 성격은 “언젠가는 도시의 쓰레기들을 씻겨버릴 비가 내릴 것”이라던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와 닮았다. 세 캐릭터 모두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펍킨은 가난과 아동학대, 트래비스는 베트남 전쟁, 아서 플렉은 아버지 없이 자란 것에 대한 아픔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세 영화는 트라우마를 간직한 인물이 사회적으로 소외받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는 테마를 공유한다. 특히 ‘조커’의 아서 플렉은 타인을 웃겨 사회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선한 꿈을 지녔지만(어머니는 그를 ‘해피’라고 부른다), 되레 다른 사람에게 무시와 조롱을 당하며 악의 분노를 키운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외로운 광대가 분노의 괴물로 ‘변해가는’ 아프고 섬뜩한 탄생기를 담아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 장르의 사회적 현실 버전일 뿐일까. ‘조커’의 배경이 된 빈부격차는 전 세계에서 심각해지고 있고, 악행과 테러 역시 증가하는 중이다. 약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은 사라졌다.

이런 환경에서 조커는 코믹북이 아니라 현실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영화 ‘조커’의 경고다.

[사진 = 워너브러더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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